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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없는 미래에 대한 생각

kicksky 2021. 11. 8. 00:04

매주 더 좋은,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에 관한 짧은 영상들을 보는데 평소에 잘 보지 않는 유형의 영상들이라 무척 흥미롭다. 이 영상들은 공통적으로 오늘보다 '미래'에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원하는 모습을 정말 구체적으로 상상한다든지, 그런 상상을 미래에 현실로 만들기 위해 현재에 해야하는 일들에 과감히 집중하고 몰입한다든지, 부정적인 말을 멈추고 해야할 일을 실천에 옮기든지 여러 삶의 지침들을 때로는 과학적으로도 알려준다. 

나도 사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 중 하나고 전혀 몰랐다가 새롭게 알게 되는 지침과 방법들이 많다. 실제로 일상에서 실천해보고도 있고 나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것도 믿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보를 얻고 실천하면서도 실은 마음 한켠에 항상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의심을 가져왔다. 처음에는 이런 의심이 그저 사회적 지위가 있는 나이 많은 백인 남성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을 때 느끼는 무조건 반사와 같은 거부감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말들이 흔히 그러하듯 반은 맞고 반은 틀리겠지 하는 막연한 태도였다. 

그러다가 오늘 샤워하면서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는데, 근본적으로 문제는 미래에 되고 싶어하는 내 모습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스무살에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아빠가 무척 좋아했으며 주변 사람들도 좋은 말을 건네주었다. 그래서 나도 그 대학에 들어간 것이 내가 정말 바라던 것, 내가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것, 내 바람을 이룬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엄밀히 말해 그 믿음은 틀린 것이다. 대학에서 너무 재미있는 공부를 했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고 졸업을 한 것도 다행이다. 전혀 후회는 없다. 그렇다고해서 어떤 대학의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바람에 가까웠다. 나는 그냥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는 학생이었고 고3 시절에는 특정한 목표에 맞추어 그 과정을 관성적으로 수행한 것뿐, 내가 바랐던 내 모습에 어느 대학 출신이 된 나 같은 건 없었다. 

어쩌면 고3 때는 그런 것을 분명 꿈꿨을 수도 있다. 당시에 내가 바랐던 내 모습은 좋은 대학의 대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바람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다시 오리무중에 빠진다. 대체 그 욕망과 바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이 시기를 돌이켜 생각하면 새롭게 커리어를 시작한 올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상을 그리는 데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바라는 그 모습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맞을까?  더 나아가,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맞다는 확신이 생기더라도 어느 순간 그 꿈을 이뤘을 때 내가 바라던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아마 그 순간이 현실이 되기 전까지, 내가 그 순간을 직접 맞이하고 경험하기 전까지는 결코 모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주 앞서 말한 영상을 볼 때마다 정반대의 내 마음 속 지침을 떠올린다. 내가 미래에 되고 싶은 상을 그리려면 우선 현재의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바라고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그 단계를 뛰어넘은 채로 내 것이 아닌 미래를 맞이한다면 그 때는 과거가 된 수 많은 날들의 현재도, 현재가 되어버린 바라마지 않던 미래도 다 남의 것이 되어버린다고. 나는 스무살 초반 시기에 느꼈던 영문 모를 공허함과 불안함이 이제 무엇이었는지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고 내가 살아갈 남은 인생 동안 그 시기를 또 반복하게 될까봐 두려울 때도 있다. 이러한 우려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소극적인 태도나 소시민적인 일면으로 비추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보인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나에게서 출발하지 않는 꿈은 더 이상 꾸고 싶지 않다.